사회 적응 훈련 - Vintage Writings

어제는 독특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수업 시간이나 연구실에서는 아직까지도 변방에서 서성대고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있지만 유도부에서 마저 변방을 서성인다면 인생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서 먼저 말도 걸고 약간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이런 곳 저런 곳을 같이 다니고 있다.

 

그리하여 어제 오전에는 니시진(西新)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운동을 했다. 정말 깨끗하고 차분하고 깔끔한 도장이었다. 정말 일개 고등학교의 유도장이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체육관 건물도 깨끗하고 도장 또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아주 깨끗했다. 크기도 매우 커서 무려 경기장이 2개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선배들의 명찰이 아주 많이 붙어있었는데 타이쇼(大正 : 1912~1926년 사이의 연호) 시대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매우 역사도 깊어 보였다.

 

그리고 인상적인 문구도 보였다.

 

 

대충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찾아라'라는 뜻이다.


운동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이 학교는 후쿠오카현 내에서 가장 뛰어난 고등학교란다. 일본 만화책이나 소설에서나 보았던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공립학교! 역사도 매우 오래되어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선배들이 돈이 많아서 지원이 아주 좋다고 한다. 유도장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학교 이름은 슈유칸 고등학교. 도대체 저 가운데 한자는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다들 동경대를 목표로 하는지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큐슈대 유도부 사범이신 오쿠다 선생님의 댁에서 시시나베를 먹었다. 그 전날부터 무지 빠른 일본어로 내일은 시시나베를 먹으로 집으로 오라는 말을 하셨다. 뭐 선배의 누가 어떻게 해서 후배들 먹으라고 주었다는 것 같았지만,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오직 '시시나베'만 들렸다.

 

시시나베...

 

과연 뜻이 뭘까 궁금하였다. 사전으로 시시를 찾아보니 '시시(小便) = 쉬' 였다.

 

음... 설마 그럴리가.

 

가기 전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노시시(猪 : 멧돼지)의 시시란다.

 

음... 그럼 그렇지.

 

오쿠다 선생님의 집에는 혼자 찾아가기는 절대 무리라 주장 마에다 군과 함께 4시 반쯤에 롯폰마쓰 캠퍼스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운동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니 1시 30분이 조금 안되었다. 집에 갔다 오기에는 교통비가 너무 아까워 니시진 구경이라도 할까 했지만 운동이 너무 힘들었는지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둘러보고는 버스를 타고 롯폰마쓰 캠퍼스로 갔다. 요즘 중간에 1~2시간 정도 시간이 남을 때 내가 자주 하는 일을 하러.

 

그것은 바로 도서관에서 잠자기. 체력 보충도 하고, 특별히 돈도 들지 않고, 왠지 학교 시설을 열심히 이용하는 것 같고.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어쨌든 1시간 정도 잠을 잔 후 마에다 군과 만나 오쿠다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후쿠오카시의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무려 버스비가 340엔이나 나왔다. 이곳 또한 내가 사는 곳과 마찬가지로 후쿠오카시 임에도 주변에는 논 밖에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또 한참을 걸어 드디어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착실한 슈헤이 군(1학년)이 눈물을 흘리며 불을 지피고 있었다. 저 솥에서 끓고 있는 것이 시시나베인 것이 분명한데, 과연 맛을 어떨지 궁금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솥에서 이런저런 야채와 함께 멀건 액체가 끓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액체에다 미소를 풀었다. 오쿠다 선생께서 직접 시범을 보이셨다. 참고로 오쿠다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굳히기로 매우 유명한 분이란다.

 

오쿠다 선생님은 당시에도 70대가 넘었거나 가까워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아주 가끔씩 연락하는 옛 유도부원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

 

 

 

 

이번에는 일 학년 학생들이 투입되어 미소를 풀었다. 그들은 정말로 눈물을 흘려가며 미소를 풀었다. 말 잘 듣는 일학년. 우리 유도부도 보고 배워야 할 올바른 모습 이리라. 

 

2kg은 넘어 보이는 미소 한통을 풀고는 이제 다 되었다면서 선생님께서 먼저 맛을 보았다. 분명 선생님은 '예상외로 맛이 좋군,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모두들 한 사발씩 나베를 퍼서 먹기 시작하였다.

 

 

나도 한 사발 퍼서 먹기 시작했다.

 

전혀 맛이 없잖아..... 너무 싱거웠다. 이 놈의 멀건 국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래도 열심히 먹었다. 내가 언제 멧돼지를 먹어보겠는가. 그들도 '돼지고기와는 맛이 다르네'하는 걸 보니 분명 일본인들도 쉽게 못 먹는 것이리. 확실히 돼지고기와는 맛이 달랐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끓여 먹는 것보다는 삼겹살 굽듯이 구워 먹으면 훨씬 맛있었을 것 같다.

 

뭔가 환상적인 분위기의 사진이 되어버렸다

 

 

나베를 다 먹고는 캠프파이어하듯이 불을 피워놓고 주변에 모여 술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이런 것을 위해서 저런 땔감들도 다 준비하다니. 분위기도 좋고 술도 좋아서 이것저것 많이 마셨다.

 

사실 요즘 조금 걱정스러운 것이 이런 자리에서 술 잘 먹는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어 술을 전혀 거절 안 하고 너무 섞어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섞어 마시니 어제는 어느새 위험한 상태까지 갔다. 정신의 끈을 놓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계속 이러다가는 위험해. 다음부터는 조금씩 마셔야지 술 잘 먹는 한국인처럼 보이려다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빠지게 생겼다.

 

어제는 이런저런 경험도 많이 하고 또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해서 정말 좋았다. 요즘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낙담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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