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적응 훈련 - Vintage Writings

한국에 있었으면 지난주 내내 연휴였을 것이다. 사실 군대에 있을 때 2006년 달력을 넘겨 보며 일주일이나 되는 연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때부터 연휴를 기대해 왔지만, 결국 일본에 와버렸다. 그런데 마침 일본도 지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연휴였고 어제는 체육제인가 뭔가로 학교 자체적으로 휴일이었기 때문에 총 4일이나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문제는 4일 동안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어증에 걸릴 뻔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혼자서도 꿋꿋이 이런저런 곳을 구경하며 나름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스펙터클 했던 사건은 핸드폰과 북한 핵실험이 아닐까 싶다. 지난 금요일 하카다역에 있는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드디어 핸드폰을 구입했는데, 글세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와 보니 박스 속에 전화기가 없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잘 못 된 건가... 돈을 덜 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서 다음날 전화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날 전화를 해보니 다행히 자신들이 실수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는 김에 잠시 들려서 전화기를 찾아가기로 했다. 별 탈 없이 전화기를 받고는 계획했던 대로 드디어 초밥을 먹어보고자 어시장으로 향했다. 분명 지도에 어시장이라고 쓰여 있길래 그냥 우리나라처럼 주변에 횟집이 많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를 잔뜩 품고 간 것이다. 놀랍게도 가는 길 중간에 노인과 바다에서 등장했을 법한 생선의 뼈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제대로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횟집이나 초밥집을 찾을 수는 없었고, 어시장 쪽으로 들어가는 문조차 없었다. 오늘 학교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프로용'이란다. 여기서 프로가 어떤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산티아고 노인과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결국은 라면을 먹었다. 이곳 후쿠오카는 정말 라면을 많이 먹는 것 같은데, 뭐 입맛에 안 맞거나 하지는 않아서 항상 맛있게 잘 먹고는 있다. 그래도 초밥이 한 번 먹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위 사진은 일본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원조 나가하마 라면. 내가 여기까지 가봤다고 하니까 다들 혼자서도 잘 찾아다닌다며 놀라워했다. 음... 그럼 놀라지 말고 지네들이 안내해 주던가...

 

돌이켜 보면 일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성격인데 처음에는 그것을 잘 몰랐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했으면 좀 더 괜찮았을 텐데 싶다. 그래도 먼저 말을 잘 안 하는 내 성격이 뭐 그때나 지금이나 변했겠나 싶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는 왠지 이름이 애널 같은 캐널시티 하카타에 가고자 하카다역에서 내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커다란 종이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말로만 듣던 신문의 호외판이었다. 호외판이라는 것을 들어보기는 했어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마지막으로 호외판을 찍어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 몇 번 안되지 않을까...

 

시커먼 바탕에 '북조선 핵실험'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진 호외판이었다.

 

지금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호외판이 나왔나 보다

 

사진이 작아서 신문을 읽을 수는 없는데 아무리 봐도 저 사진은 지금의 아베 총리가 아닌가 싶다. 

 

 

내성이 쌓인 탓인지 한국인 모두가 예전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뉴스를 보니 지난 94년 '서울 불바다'라는 발언이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사재기 현상도 없었고, 오히려 놀랄 만큼 차분했다고 한다. 94년 당시에는 내가 아직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많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당시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의 한 한인 학교 학생들이 방문을 했는데 모두들 엄청나게 불안해서 한국에 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마 그때 전혀 문제없다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왠지 타지에 나와서 이런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에게 전화를 해 보았는데, 다행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번 뉴스는 핵을 두방이나 맞은 일본인들에게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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